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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14) 삼국시대 - 위, 촉, 오세계사 상식 2023. 9. 13. 17:29반응형
군웅 할거 시대
삼국 시대의 초기에는 군웅이 할거한 시대로서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220년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를 건국한 다음 해, 유비는 제갈공명의 도움으로 사천 땅에서 촉을 세웠고, 그 다음 해에는 손권이 강남에 오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삼국지연의'로 유명한 삼국 시대입니다. 삼국 시대의 유명한 군사가 있다면 바로 제갈공명입니다. 그가 등장하면서 북의 조조, 강남의 손권 그리고 장강의 유비가 천하를 삼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황건적의 난' 이 진압된 뒤 이 책임을 후한의 환관들에게 물어 그들을 제거한 후 호족들이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정쟁에서 권력을 거머쥔 인물이 바로 조조입니다. 그는 208년에 화북 지방을 안정시키고 중국 재통일을 노리고 장강 이남을 공략했지만, 유비의 군사 제갈공명의 계략에 의해 유비와 손권의 연합권에 의해 적벽에서 패배합니다. 이 싸움으로 천하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조조는 위축되었고 손권은 강남을 다졌으며 유비는 형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재통일은 280년경, 진의 무제 사마염이 마지막 남은 강남 지방 오를 멸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마염은 265년 당시 위나라의 유력한 장군으로 있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찬탈하고 진을 세운 것입니다. 290년, 진무제가 사망하면서 25명에 이르는 아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진도 그리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각 지역의 군왕으로 봉해진 사마염의 아들들이 주변 이민족의 힘을 이용하여 세력 다툼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는 이민족의 침입을 초래했고, 진은 남흉노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남북조 시대
316년, 남흉노에게 망한 화북 일대의 진을 서진이라고 하는데,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 당하고 남은 일족이 강남으로 피신하여 사마예가 동진을 세웠습니다. 이 시대에 장강 이북에는 흉노족, 선비족, 갈족, 저족, 강족의 다섯 이민족이 세운 13개국과 한족이 세운 다른 세 나라를 합쳐 장강 이북에서는 16국이 흥망을 거듭했다. 이리하여 북에 5호16국, 남에 동진이라는 남북 대립의 혼란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북은 439년에 선비 일족이 세운 북위의 태무제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남에서는 동진 이후 송, 제, 양, 진의 4황조가 교체됐습니다. 이는 훗날 남북조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우아한 귀족 문화가 꽃핀 강남의 발전
황하를 중심으로 한 화북에 비해 장강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강남 지방은 개발이 늦었습니다. 인구가 적었던 이유도 있었고 중국 문화의 발원지인 황하를 중원이라 하여 많은 왕조들이 중원에 부리를 두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강남 지방은 황폐화된 토지도 많았고, 전쟁과 정쟁 또는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서 여유로웠습니다. 이런 강남 지방은 후한 말기부터 오나라 시대까지 개발이 진행됐습니다. 특히 북방 이민족이 침입하여 남흉노가 서진을 멸망시키자 화굽의 호족들과 몰락민 그리고 당시 왕조에 염증을 느낀 백성들이 대거 남하하면서, 동진에서 송나라 시대에 걸쳐 화북과 강남의 인구 비율은 거의 대등해졌습니다. 밭농사 중심인 화북에 비해 강남에서는 수경 재배가 주로 이루어졌고, 수전 경작기술의 진보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됐습니다. 이것이 남조를 지탱했으며, 북방에서 이주한 귀족과 토착 호족층이 지배 계급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노비와 소작인을 부려 대토지를 경영했습니다.
6조 문화
장강 유역은 온난한 기후와 풍요로운 자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춥고 척박한 편이었던 화북 지역 즉, 황화 유역이 강직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면 강남 지방은 우아한 귀족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한족이 장강 이남에 세웠던 오 / 동진 / 송 / 제 / 양 / 진의 6나라를 합해 6조라고 부르는데, 6조 문화는 한족의 우아한 귀족 문화를 대표합니다.
6조는 종교적으로 불교가 융성했습니다. 357년경의 화북 지방, 특히 화북 지방을 통일했던 전진의 3대 왕 부견이 국가의 통치 이념과 정국 혼란 그리고 황폐화된 백성들의 정신적 공백을 메워줄 종교로 불교를 장려했습니다. 불교의 포용적 교리 덕에 불교는 중국 전역에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통치이념이 필요했던 전진으로서는 교세를 확장하려는 불교가 적합했던 것입니다. 4세기에 이르러 서역 승려인 불도등과 구마라습이 불전을 번역했고, 장강 이남 즉, 강남 지방 동진의 법현은 육로를 통해 인도에 파견될 정도였습니다. 또한 6세기에는 인도의 승려 달마가 찾아와 선종을 전파했습니다. 소림사 권법은 이 달마대사가 오랜 참선 끝에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대륙 전체로 퍼져나간 불교는 북조에서 국가적인 종교로 발전하여 둔황, 운강 등의 석굴 사원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조에서도 귀족층 사이에서 수용됐습니다. 게다가 불교는 중국 민간 신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통의 신선 사상에 불교 그리고 노장 사상이 더해져, 현세의 이익과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도교'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도교는 442년에는 5호16국이 난립하던 화북 지방을 평정한 선비족인 '북위'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영웅이 탄생하는 난세였음에도 영웅이 되기를 거부했던 이들이 많은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완적 / 혜강 / 산도 / 향수 / 유영 / 완함 / 왕융이 7명의 선비들은 '죽림칠현'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들은 사회에 등을 돌리고 초야에 묻힌 채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내면 세계와 자연으로의 귀의를 토론했습니다. 문학 분야에서는 동진의 도연명과 송의 사영운이 이름을 떨쳤고, 예술 분야에서는 서예가 왕희지와 화가 고개지가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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