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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21) 인디오 고대 문명
    세계사 상식 2023. 9. 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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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 고대 문명의 발생

       2만 년 전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넌 몽골 인종의 자손 인디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 고대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 기원전 1000년경에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중미 문명 지역의 메소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의 안데스에 가장 오래된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은 인디오들은 주로 수렵과 어로를 생업으로 삼았고 서쪽에서는 오마하족이 들소 사냥을 하며 유목민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반명, 대륙의 허리인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멕시코 고원에는 기원전 6500년경부터 농업이 발달해 꽤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도 건설되었습니다. 기원전 1150년경에는 올메크 문화라는 도시 문명이 건설되어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중심 세력이었다가 쇠퇴하고 저지대의 마야 지방의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아메리카는 16세기에 이르도록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발전을 영위하다가 유럽 열강들의 침입으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중앙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중앙 고원에는 신전 도시인 테오티우아칸은 5세기 후반까지 번성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계획 도시였습니다. 해와 달의 발생지이며 시간이 시작되는 성지로 여겨졌다. 그래서 많은 신전들이 건설되었습니다. 그중 태양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는 아메리카 문명의 백미입니다. 한편 3세기 후반 과테말라 저지대에 마야족이 문명을 일구며 성립되었습니다. 

       10세기 말에 이르자 멕시코 고원의 중앙아메리카에는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스러진 후 톨텍인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일대의 부족들을 평정한 후 과테말라 지역의 마야 왕국까지 점령합니다. 이들은 아메리카 최초의 정복 왕조로 추정됩니다. 

       14세기 초반에 아스텍 부족이 테스코코 호수 안쪽의 늪지대에 새로운 문명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늪지 위에 세운 이 도시는 '선인장의 땅'이라고 불리는 테노치티틀란입니다. 아스텍 부족은 도시를 세운 후 호수 바깥쪽의 부족들을 정벌하기 시작해 순식간에 중앙아메리카, 특히 멕시코 지역의 패권자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신전과 궁전 등을 건설하여 아슽첵 문명을 성립시켰습니다. 

       아스텍인은 멸망을 막기 위해 인간의 피와 심장을 먹고 산다는 태양신에게 인간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중앙아메리카에는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아스텍 문명은 1521년, 아스텍의 수도인 테스치티틀란으로 진군해 온 에스파냐 침략자들에 의해 멸망합니다. 에스파냐 사람인 코르테스는 아스텍에 적대적인 주변 국가들과 연합해 아스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한 뒤 항복을 강요했습니다. 코르테스는 부족들 사이를 이간질 시켜 서로 적대시 하는 전술을 펼쳤던 것입니다. 아스텍의 민중들은 결사적으로 항전을 벌였지만, 결국 명망하고 말았습니다. 

     

    안데스

       안데스에서는, 기원전 1000년 페루 중앙 고원 중심에 차빈 문명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여러 도시 문명이 번영을 이루다가 12세기 이르러 금속공예가 특색인 치무제국이 세워졌습니다. 이어서 15세기에는 무초 황금 도시로 유명한 쿠스코를 중심으로 잉카 제국이 발전했습니다. 12세기 말 안데스 지역에 자리 잡은 잉카는 2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며 제국으로 거듭났습니다.

       잉카 제국은 중앙집권 국가로 황제는 태양신의 화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황제는 전국을 4개 지방으로 나누어 통치했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대신 결승 문자인 퀴푸를 사용하여 기록했으며, 고지대에서의 관개 기술과 건축술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잉카 제국도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스파냐에 의해 1533년, 멸망하게 됩니다. 

     

     

    무함마드의 등장

       아라비아반도는 지중해와 서아시아 일대를 양분하고 있는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권에 있었습니다. 6세기에는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항쟁이 격화되어 기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이 대거 남하하면서 양 세력은 곤경에 처했습니다. 바로 이런 정세 속에서 이슬람 신진 세력이 부상했던 것입니다. 이슬람은 상인 세력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무역에 능통한 세력이었습니다. 더욱이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가 기력을 상실하고 인도양에서 홍해와 이집트를 거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로 가는 교역 루트가 이용되면서 상업도시인 메카와 메디나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랍인 민중의 생활은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또한 아랍인들은 크리스트교와 유대교를 알게 되면서 다신교에 기초한 카바 신전의 흑석을 믿는 암석 신앙에 대해 회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무함마드는 571년, 메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어머니마저 여의고 백부의 손에서 양육되었습니다. 그 후 상인의 길을 걷다가 점차 종교적 명상에 잠겨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610년, 무함마드의 나이 40세였습니다. 그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카바 신 중 최고신인 알라를 유일신으로 삼고, 알라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부족과 계급의 차는 없다는 내용의 이슬람교를 창시했습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메카의 부유층들로부터 박해를 받습니다. 그의 주장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카바 신전의 신들을 배격하는 것이었고, 신전을 이용하는 메카의 부호들에게 도전하는 행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빈민층의 지지를 받자 부호들은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껴 그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결국 무함마드는 622년, 메카와 대립하고 있던 북방 도시 메디나로 떠납니다. 그 뒤 이슬람교도의 교단을 조직한 무함마드는 630년에 메카를 정복하고, 다음 해에는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통일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온 것을 '헤지라(혹은 히즈라, 이주라는 뜻)' 라고 하며, 이 해를 이슬람교의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특징

       이슬람이란 '유일신 알라에게 절대 순종한다' 라는 뜻으로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자 예언자입니다. 무함마드는 예수가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임은 인정하지만 그가 곧 신이라는 기독교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예수도 모세나 이브라함과 같은 한 사람의 에언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예언자의 계보 맨 마지막에 자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슬람교의 교리는 '신은 하나, 알라뿐' 이라는 단순 명쾌한 유일신에 근거합니다. 무함마드는 종교의 창시자이긴 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알라는 '여호와'와 어원을 같이 합니다. 알라는 전지전능한 신이며, 모든 곳에 존재하며 무한한 포용력을 지닌 신입니다. 이슬람교 성전인 "코란"은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받은 알라의 계시 내용과 계율 따위를 후계자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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