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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8) 공화정의 쇠퇴와 로마 사회의 변질세계사 상식 2023. 9. 13. 05:33반응형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과 내란의 시작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마케도니아와 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속주로 삼으면서 각지로부터 대량의 노예와 값싼 곡물이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한편, 중장보병으로 활약한 로마의 자작농민들은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고, 가장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가족들은 결국 귀족에게 토지를 팔고 이농하기도 했습니다. 자작농의 토지를 산 귀족들은 대토지의 소유자가 되어 농장을 경영하게 되는데, 이 대농장을 '라티푼디움' 이라고 합니다. 라티푼디움에는 전쟁 때문에 노예로 끌려 온 포로와 피정복민들이 일을 했습니다.
한편, 귀족에게 땅을 팔고 몰락한 농민들은 가족 단위로 로마 시내로 흘러들었습니다. 시민권을 소유한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중장보병의 자원이 되는 농민이 몰락하면 할수록 로마군의 약체화로 이어져 이것이 또 하나의 골칫거리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빈민과 벌족의 대립 및 속주민의 반항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로마 명문 귀족 출신으로 농민의 몰락을 막기 위해 호민관이 된 그라쿠스 형제는 중소 농민의 몰락을 막기 위해 토지의 재분배와 대토지 소유의 제한을 단행했습니다. 원로원과의 상의도 없이 개혁을 추진하던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결국 반대파에게 암살당하고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도 이후 형의 정책을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혼란 속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끝난 후 로마는 내란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쇠퇴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부터 100년간을 '내란의 세기' 라고 부릅니다. 기원전 1세기가 되자 로마 시민권을 원하는 동맹시가 일으킨 동맹시 전쟁과 노예의 반란으로 로마 사회는 한층 더 불안정해졌습니다. 이 무렵 의회를 양분하고 있던 평민파와 벌족파의 유력자는, 몰락 시민을 사병으로 들여 세력을 키웁니다. 기원전 60년에는 평민파의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했습니다. 로마 제일의 대부호 출신인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원정에서 전사했지만, 갈리아 원정으로 세력을 모은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제거하고 정권을 독점합니다. 이로 인해 사실상 로마 공화정은 붕괴했습니다.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도망갔으나 결국 이집트인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로 간 카이사르는 그곳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집트의 궁정 투쟁에도 개입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의 여왕으로 삼았습니다. 다시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이후 기원전 46년 종신 독재관에 올라 사실상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에 브루투스를 선두로 하는 급진적 공화파들은 카이사르를 암살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동료들은 정작 평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 휘하의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실시하고 원로원에 대항하였으나, 이내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은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쓰러뜨렸습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멸망하고 옥타비아누스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지중해를 포함한 로마의 정치적 통일은 달성되었습니다.
거대 제국 로마의 흥망
팍스 로마나 (Pax Romana)
기원전 27년, 원로원은 오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바치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나는 그저 제일 시민" 일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하며 로마 제정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정치 제도는 공화정의 전통을 존중한 것으로, 프린키파투스(원수정)라고도 합니다. 네로 황제의 죽음 이후 잦은 내란에 이은 플라비우스 왕조마저 몰락하게 되고, 이윽고 5현제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즉,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를 거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5명의 황제까지 약 200년 동안 광대한 영토와 속주 지배를 바탕으로 한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라 불리는 안정기가 이어진 것입니다. 이 시기에 교통망의 정비와 화폐 도량형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계절풍 무역을 통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로마군의 주둔지였던 런던, 파리, 빈 등에 신도시가 건설됐습니다.
제국의 쇠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그의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게 되면서 5현제 시대는 끝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 3세기에 카라칼라 황제가 속주국의 모든 자유민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 세계가 확장됐습니다. 이는 로마 시민의 수를 늘려 세금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이로써 로마인과 숙주인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명목상 남아 있던 도시국가적인 형식도 사라지고 로마는 비로소 보통의 영역 국가가 되었습니다. 3세기 말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과거 오리엔트의 독재정치를 본뜬 도미나투스(전제군주)를 펼쳤고, 이후의 콘스탄티누싀 황제 때부터 대토지 경영에 노예 대신 콜로누스(소작인)를 이용하는 콜로나투스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음을 의마하는 한편 시민의 자치를 쇠퇴시켰습니다. 외부적으로도 로마는 게르만인 등 주변 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재정난이 겹치면서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세력이 커진 게르만인 용병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재정난이 겹치면서 로마 제국은 급속히 몰락해갔습니다. 결국 제국은 티오도시우스 황제 사후, 395년에 동서로 분열됐습니다. 그중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였으나, 동로마 제국은 비잔틴 제국으로서 1453년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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