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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6)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이다"세계사 상식 2023. 9. 13. 03:50반응형
아테네학당에 등장하는 50여 명의 소피스트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아낙사고라스, 피타고라스, 아베로에즈, 아낙사만드로스, 데모크리스토스, 제논, 디아고라스, 고르기아스, 크리티아스, 알키비아데스, 아미스키네스, 크세노폰, 알렉산더, 소크라테스, 크세노크라테스, 테오프라스토스, 에피쿠로스, 아리스티포스, 유클리드, 조로아스터, 프톨레마이오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자연 법칙이나 우주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철학이란 과학이나 수학, 정차학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학문을 망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철학적 관심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삶으로 옮겨갔고, 자기 자신과 근원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이고, 행복은 무엇이며, 용기란 무엇인가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놓고 논쟁한 것이 소피스트들입니다. 소피스트란 변론법을 가르치는 교사로, 궤변론자 혹은 순회 교사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사학과 웅변술에 관심이 있었고, 보편적 진리를 부정하며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소피스트들과 달리 젊은이들에게 화술이 아닌 보편적 진실과 인생의 가치 등에 대해 이야기 했고, 지식과 도덕의 일치를 주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붙잡고 "용기란 무엇인가?" , "지혜라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을 '문답법', 혹은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여 마침내 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출산에 비유해 '산파법' 이라고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듯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을 이러한 문답을 통해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그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유도하여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먼저 인식시키고, 진정한 지식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자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젊은이들은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게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때 탈옥을 권하는 제자들의 권유를 물리치며 "악법도 법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언행이 후대에 전해지게 된 데에는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영향이 컸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정리해 책으로 남겼습니다. 플라톤은 젊었을 때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필로소피아(철학)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현실 세계는 참다운 세계가 아니며,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이데아 세계만이 절대적이고 참된 세계로서 모든 사물의 최고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감각적 경험에 의한 세계인 현상계는 이데아의 모방이며 그림자일뿐이고 가변적 세계이며 사물의 진실로서 사유의 눈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한 이데아야말로 참다운 세계이며 초월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 이데아를 객관적으로 실재하며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이 주장하는 참된 삶이란 선의 이데아를 모방하여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정욕, 기개, 이성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영혼 삼분설을 주장했는데, 의지가 나약한 원일을 이성, 기개, 정욕의 부조화에서 찾았습니다. 자신의 저서 "국가론"에서는 철학자가 나라를 통치할 때 비로소 이상국가가 실현된다는 철인정치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적 방법론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에 플라톤 학술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인 플라톤과 달리 이데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했습니다. 플라톤이 사물의 본질이 이데아의 세계에 있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성은 그러한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물 속에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물의 본질이 사물과 따로 떨어져 있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한 플라톤의 주장을 이원론이라고 한다면, 사물의 본질은 바로 그 사물 속에 내재하고 있다고 본 일원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플라톤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이 땅의 모습도 이상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현상계에 본질이 있다는 것을 부정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계에 객관적 실재가 있으며 그것을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실재주의를 주장한 것입니다. 객관적 실재를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대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체계화시키기 위해 정밀히 관찰하고, 표본을 수집하고, 물질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모아서 요약하고 분류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것을 실험하고 경험하고 확인하는 방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지식의 탐구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적 귀납접적 방법론입니다.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집대성한 그의 영향혁은 후에 유럽의 중세 시대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리스의 철학
자연철학은 인간 대상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신화적인 관점에서 설명되던 자연현상을 논리에 근거하여 해명하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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