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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37) 나폴레옹 - 프랑스 제국 시대
    세계사 상식 2023. 10. 1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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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제국 시대를 연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등장

       코르시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섬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코르시카 독립의 영웅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자코뱅당에 가입하여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함께 그도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795년, 왕당파의 쿠데타를 진압함으로써 새로운 신뢰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물가 상승과 몇몇 정치 세력과 대두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이 커져 가자 부르주아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였습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원정의 총사령관으로서 오스트리아 공략의 임무를 완수하고, 1797년에는 북이탈리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의 주도로 유럽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었던 1차 대불 대동맹을 무너뜨렸습니다. 1798년에는 영국의 인도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이집트 원정을 떠났으나 실패했습니다. 

     

    황제 나폴레옹

       1799년에도 유럽의 나라들은 제2차 대불 대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에 이집트 원정을 나섰던 나폴레옹이 혁명력으로 안개의 달인 11월에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정국 불안과 잇따른 시위 사태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상원과 하원을 파리 교외로 강제 이전시킨 뒤 총재 정부를 무너뜨린 후 3명의 통령으로 이루어진 통령 정부를 수립하여 스스로 제1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1802년에 프랑스는 영국과 아미앵 화약을 맺고 휴전을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 각국이 맺었던 제2차 대불 대동맹은 해체되었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를 통해 종신통령이 되었습니다. 1804년에 이르러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를 법제화한 프랑스 민법전이 공표됩니다. 이 민법전의 기본 정신은 한마디로 "사유 재산의 신성불가침"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본가와 소농민을 새나라의 지주로 보고, 이들의 소유권을 최대한 보호해 준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법전으로 명문화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여 국가의 중앙은행으로 삼고, 종교 협약을 통해 교황과 국가 간 분쟁을 해결했으며, 교육 제도의 개혁 등도 단행했습니다. 그는 국민 각 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로 1804년 국민 투표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프랑스의 제국 시대를 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 신성로마 제국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탄생한 제국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절정기

       프랑스가 제국으로 거듭나자 다시 영국의 주도하에 1805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제3차 대불 대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후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무찔렀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공격 방향을 내륙으로 돌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을 무찌르고 대불 대동맹을 해체합니다. 또 그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정복한 후 1806년, 라인 동맹을 결성해 중세 이후 실질적인 영토는 없으면서 약 1,000년간 제국으로서의 역사를 이어온 신성로마 제국을 해체했습니다. 이로써 신성로마 제국은 소멸했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은 늘 대불 대동맹을 주도했던 영국에 대해 대륙 봉쇄령을 내려 영국과 대륙 각국의 통상과 교통을 봉쇄합니다. 1807년에는 러시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을 격파하고 틸지트 조약을 맺어, 프로이센 영토의 상당 부분을 할양받았으며,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에 협력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에 따르지 않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점령하여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를 나폴리와 스페인의 왕으로, 동생인 루이를 네덜란드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리하여 눈부신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은 왕비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재혼하면서 프랑스 제국의 황제로서 절정기를 맞습니다.

     

    나폴레옹의 몰락

       유럽 각국에 대한 나폴레옹의 정복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세계에 퍼뜨렸습니다. 스페인 민중이 나폴레옹에 저항했고, 프로이센에서는 농노 해방 등의 혁명에 따라 근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원정에 성공하지 못한 이집트에서도 프랑스로부터 혁명 사상을 배워 300년간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에 대한 독립 열망을 촉발시키기도 했습니다. 

       한편, 영국의 농작물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을 위반하고 밀무역을 시행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나폴레옹은 1812년에 러시아 원정에 나섰지만 실패했습니다. 러시아를 응징해 유럽을 완전히 석권할 목적으로 50만 대군을 투입한 프랑스 제국군은 러시아군의 시간 끌기 작전에 휘말려 동토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제대로 전쟁 한 번 치르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틈을 타 라이프치히로 진군한 유럽의 동맹군들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무너뜨립니다. 이어 파리를 점령한 동맹군은 나폴레옹의 퇴위와 왕정 복고를 결정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 잠깐 제위에 오르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난 후,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애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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