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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상식 35) 시민혁명와 청교도혁명세계사 상식 2023. 10. 13. 15:26반응형
시민 계급의 성장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상인이 아닌 생산자가 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분업에 기초한 협력 생산을 시행했습니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되는 공장제 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지방 영주들을 제압해 강력한 중앙집권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유럽의 왕들과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대상인들은 서로 결탁하여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다양한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장제 수공업의 이윤이 생산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불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권과의 결합을 강화하고 공장제 수공업에 기초한 중소 상공업자들의 활동을 억제했습니다. 그러자 중소 상공업자들이 대상인들의 지배에 대항하여 공장 생산에 종사하는 공장 경영자인 산업 자본가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국 농촌의 경우 자영 농민들이 합동으로 모직물 공업을 운영하면서 젠트리 계층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젠트리는 자영 농민들과 더불어 영국의 시민 계급을 형성하고, 모직물 수출을 둘러싸고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대상인들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농촌의 자본주의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이렇나 도시와 농촌의 자본주의화는 새로운 시민 계급의 대두를 촉진시켰습니다.
시민혁명
도시와 농촌의 자본주의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시민 계급이 절대주의를 내건 왕정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세계를 확립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시민혁명입니다.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그리고 아메리카 독립혁명, 프랑스혁명이 시민혁명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유럽을 비롯한 아메리카 각국은 이들 혁명을 거쳐 신분의 평등, 경제적자유, 의회제 민주주의가 기본인 시민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의회파와 왕당파
1620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서거한 후 그녀에 의해 참수당했던 스코틀랜드의 왕녀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대상인들과 결탁해 역시 국교도를 지양하고 청교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의회와 대립합니다. 제임스 1세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청교도의 일부가 북아메리카로 건너갔습니다. 제임스 1세 다음으로 왕권을 잡은 찰스 1세도 청교도를 탄압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의회는 1628년에 의희의 동의가 없이는 과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것과 부당 체포를 할 수 없다는 것, 일반 국민은 군법에 의해 재판될 수 없다는 것, 일반 시민의 집에 주인의 허락 없이 군인을 숙박시킬 수 없다는 것, 의회의 협찬 없이 증요, 공채, 강제 기부, 과세 등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 등을 요구하는 "권리청원"을 인정 받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교도가 중심이 돼 의회파와 왕 중심의 왕권파가 대립하게 되어 급기야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크롬웰
1649년, 영국 의회파 중 크롬웰이 이끄는 독립파에 의해 영국의 국왕인 찰스 1세가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써 영국에서는 로마에서나 실시되었던 공화정이 수립됐습니다. 스튜어트 왕조를 무너뜨린 이 시민혁명이 바로 청교도혁명입니다. 크롬웰은 같은 해 아일랜드를 정복했습니다. 그는 아일랜드 주민들을 학살하고 토지를 몰수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국과 아일랜드 분쟁의 시작입니다. 또한 크롬웰은 1651년에 네덜란드 선박의 영국 입항을 금지했습니다. 결국 크롬웰의 네덜란드 선박입항금지법으로 인해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만, 영국군이 네덜란드군을 격파하면서 영국의 해외 진출이 유리해졌습니다. 이후 크롬웰은 의회를 해산한 후 호국경의 자리에 올라 독재정치를 펼치게 됩니다. 그는 영국을 유럽의 경제 강국으로 이끌었습니다.
명예혁명
크롬웰이 죽자 그의 정권을 물려받은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재정치에 대한 강한 반대에 부딪혀 사임했습니다. 1659년의 일입니다. 그 후 장로파가 왕당파와 결탁해 망명 중인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를 귀국시키면서 1660년, 다시 왕정을 부활시켰습니다.
공화정에서 다시 예전의 절대적 전제정치로 돌아가려는 찰스 2세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와 연대해 가톨릭을 부활시키려했으나 의회의 반발로 실패했습니다. 찰스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임스 2세가 또 다시 가톨릭 부활과 전제정치를 도모하자 의회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찰스 1세 말 무렵에 탄생한 왕권 제한파인 휘그당이 중심이 되어 네덜란드에서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2세와 남편 윌리엄 3세를 공동 통치자로 맞이하자, 제임스 2세는 망명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왕권 옹호파인 토리당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이렇게 혁명을 주도한 위그당은 내각을 구성한 후 국정을 담당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무혈 혁명인 명예혁명입니다. 이로써 대단히 독특한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가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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