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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상식 2) 계급사회의 탄생
    세계사 상식 2023. 9. 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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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의 발생과 도시국가의 탄생

    씨족 공동체 사회는 공동 소유와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평등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의 농업 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의 생산력은 크게 증대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빈부의 차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관개 농업이 행해진 큰 강 유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이 늘어나 많은 인구가 한곳에 모여 살 수 있어 큰 촌락을 형성했습니다. 촌락은 서로 뭉쳐 도시를 형성했는데, 각 도시는 주변에 성을 쌓고, 제각기 독립하여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를 도시국가라 일컫습니다. 이러한 도시국가에서는 각종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문명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치수, 관개 등 농경 기술의 발달과 청동기의 사용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다른 부족을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칼로 무장한 부족들은 이웃 부족들을 정복했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그 후 부족장이나 귀족 등의 유력자들은 사람들을 통솔하기 위해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신전을 관리하는 신관은 농사가 잘 되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농경 중심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미 사유재산의 개념이 성립된 사회의 구성원들은 농사가 잘 되길 빌며 신전에 공물 등을 바쳤는데 이로써 신관에게는 권력이 부여되었습니다. 또한 신전이 만들어지자 그 의식과 공물의 양을 기록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농경의 발전은 빈부의 차를 낳았고 빈부의 차는 계급을 형성했으며, 이는 곧 세계사의 대변혁을 가져왔습니다. 

     

    4대 문명의 발상

     도시국가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하류 지역의 이집트, 그리고 인더스 강 하류 지역의 인도와 황하 유역의 중국에서 각각 생겨났습니다. 문명은 이들 도시국가에서 발생했는데, 4대 문명이 발생한 지역의 공통점은 기후가 따뜻하고 큰 강을 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큰 강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과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대규모의 수리 사업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즉,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조건이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한편, 문명이 발생한 농경지대의 주변, 즉,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걸친 건조 지대에서는 말, 소, 양, 산양 등의 가축을 기르면서 일정한 범위 내를 유목하는 유목민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경민과 물자를 교환하는 동시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으나 곧 서로의 영역을 건 항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비옥한 지역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싸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의 전개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서 발원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이 발생한 이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일컬어지는데, 농사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문명의 발원지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큰 산맥이나 바다가 없고 지형이 탁 트인 평원 지대였기 때문에 주변 유목 민족들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인 들이 건립한 도시국가로 도시는 성벽으로 에워싸고 있고, 도시의 중앙에는 '지구라트'라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후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있던 아카드인 들이 이 지역을 침입하여 정복했는데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하여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피정복민들을 강력하게 억압하는 비효율적인 통치로 인하여 피정복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이는 곧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때맞춰 아무르인 들이 아카드 왕국을 침입해 아카드인들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설한 아무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재통일했고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왕권체제 아래에서 효율적인 통치를 펼쳤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제6대 왕 함무라비는 멸망한 왕국들의 사례를 교훈 삼아 왕과 정부가 정한 법령에 따라 국민을 다스리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6세기에 철제 무기를 사용하는 도 다른 민족인 히타이트인 들이 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기원전 10세기경에 철기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 뒤로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계속해서 아시리아의 대통일과 칼데아를 비로한 여러 국가의 분열, 페르시아에 의한 대통일 등 매우 복잡한 변화는 겪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여러 도시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겪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많은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잦은 전쟁은 영웅에 대한 서사시를 낳았고, 도시국가의 멸망은 아름다운 시가로 전해집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탄생

     도시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전체를 위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할 적절한 규칙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와 같이 명백한 범죄 행위들에 관한 몇 가지 규칙들이 있긴 했으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의 욕망이 다양해짐에 따라 더 많은 강력한 규율들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규율들은 왕정 체제 하의 군주들이 군주제를 지키고, 백성들의 생활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제정한 것입니다. 

      기원전 19세기 초에는 유목 민족인 아무르인이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하여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제6대 함무라비 왕은 분열되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습니다. 함무라비는 영역 내의 다민족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법전을 제정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를 재통일한 뒤 반포한 이 법전이야말로 인류 최초의 진정한 법전이라 이를 만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거대한 선판에도 쐐기 문자로 새겨져 있는데, 석판에 수메르어로 쓰인 282개의 법조항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법전의 내용은 형법, 민법, 상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습니다. 또한 왕국에는 귀족과 평민, 노예로 나눠지는 신분제가 있었는데,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높은 신분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에 입각한 동태복수법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밖에 주로 개인의 재산에 관한 규정이 있고, 이자나 담보에 대한 기록들도 있다. 또한 미망인이 남편의 재산을 아들과 똑같은 비율로 상속할 수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그 당시에 상속에 관한 조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빌론의 왕은 왕인 동시에 국가의 최고 성직자였습니다. 따라서 법전에는 바빌론의 종교에 관한 규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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